판매 담당자 직접 상담 · WhatsApp
BRL
판매 담당: Fernanda Walter
편지 No. 2

편지 I · 선의 발견: 첫 번째 외침

글 Marcus Yabe ·
〈Os Traços das Três Marias〉, tela에 Técnica mista, 2020

처음부터 찾아온 이에게,

모든 탄생은 이름이기 전에 울음이다. 내 선도 그렇게 태어났다. 문법도, 기술도 없이, 세상이 내 무릎 위에 올려놓은 무게를 세상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절박함만으로. 그것은 업무 회의에서, 커피 한 잔과 또 한 잔 사이에 전해진 장면들이었다. 도시를 취재하고 그 도시를 살갗에 붙인 채 돌아온 사람들이 들려준 장면들. 나는 들었다. 그리고 내가 들은 것은 떠나지 않았다.

첫 캔버스 〈선의 발견〉은 여러 번 그려지고 여러 번 묻혔다. 새 판본이 앞의 것을 묻었다. 잊으려 하지만 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내 그림은 정답이 아니라 퇴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색은 진동했고, 그 아래에는 침묵과 고뇌와 물감이 있었다.

이 시기에 나는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았다. 몸부림쳤고, 선도 나와 함께 몸부림쳤다. 선은 〈선의 몸〉에서 검은 창살 사이에 갇힌 몸이 되었다. 〈선의 섹슈얼리티〉에서는 욕망의 열기와 핏물 웅덩이를 함께 떠올리게 하는 붉은 바탕 위에서 베인 살갗이, 혹은 소름이 되었다. 〈선의 로맨티시즘〉에서는 얼어붙은 판잣집의 얇은 이불 아래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주위의 모든 것이 침묵을 요구하는 곳에서도 애정은 기어이 깃들어 산다는 것을 증명했다. 파벨라를 가로지르며 기억과 고통을 동시에 씻어 내는 개울이 되었다.

그리고 애도가 되었다. 〈세 마리아의 선〉은 세 점의 캔버스, 이백사십 센티미터의 통곡으로, 자식을 잃고 우는 어머니들을 위한 것이다. 제단을 세우듯 그렸다. 원을 그리는 몸짓, 다정함과 상처 사이를 오가는 색, 현존으로 바뀐 부재.

하지만 나는 춤도 추었다. 〈선의 프레부〉와 〈선의 올린다〉에서 나는 캔버스가 군중이 되게, 비탈길이 되게, 이월이 되게 했다. 중심을 원하지 않았고, 방향을 원하지 않았다. 선을 이끌지 않았다. 선이 나를 끌고 가도록 두었다. 축제와 비극이 같은 팔레트를 쓴다는 것을,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가장 잘 축하할 줄 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시기의 끝에서, 나는 선을 산산조각으로 터뜨렸다. 〈선의 해체〉는 내가 몸짓의 몸을 열어 그 안에서 고동치는 것을 들여다본 순간이다. 창조의 해부학처럼. 내가 선을 해체한 것은, 더는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을 보고 순진하다고 여긴다면, 다시 보라. 아직 알지 못하던 화가의 습작이 아니다. 나의 기록이다. 너무 많이 알고 있던 한 남자가, 처음으로, 아무것도 모를 필요가 있었던 기록.

Marcus Yabe, 제I기, 2020년과 2021년

공유:WhatsApp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