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II · 형태의 발견: 원과 집
글 Marcus Yabe ·
아직도 책장에 가족사진을 간직한 이에게,
외침 다음에는 질문이 온다.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선을 줄이고 줄여 하나의 악센트가 되게 했고, 그 악센트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형태가 태어났다. 원이다. 원은 자궁이고, 눈이고, 둥근 식탁이고, 매듭이다. 또한 제자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이의 정확한 도형이기도 하다. 나는 그 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시기에 나는 가족을 그렸다. 액자 속 가족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것을 짊어진 채 식탁에 앉아 있는, 내가 알아보는 가족을. 〈성가족〉에서 나는 같은 신비를 세 번 그렸다. 처음에는 선명한 빨강으로, 살과 갈등, 유대가 안식처라기보다 굴레로 드러났다. 다음에는 어두워진 색조로, 끊어지기 직전의 실, 흉터 사이에서 버티는 사랑. 마지막에는 초록으로, 몸들이 지키기 위해 서로를 껴안고, 같은 몸짓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내밀한 밀림. 내게 성스러운 것은 한 번도 고요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날것 그대로의 생존이다.
깨끗함에는 마음 쓰지 않았다. 내가 충실한 것은 서사다. 모든 것을 드러낼 생각 없이 층 위에 또 층을 쌓았다. 모든 가족에게는 지하실이 있으니까. 혼돈의 에너지를 저 아래, 땅속에 남겨 두어, 유산이 그러하듯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떠받치게 했다.
그러자 얼굴들이 내게로 왔다. 〈같은 침묵의 일곱 변주〉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듣기 위해 내가 그린 일곱 개의 푸른 가면이다. 같은 몸짓이 일곱 개의 침묵한 목소리로 번역되려 애쓴다. 그리고 〈Familexas〉에서 나는 얼굴들을 셋으로 모았다. 가족처럼, 삼위일체처럼, 오래된 사진처럼. 꿰매진 입들은 어떤 외침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꺼진 별들이 흩뿌려진 팔월의 하늘 아래에서, 그들은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점토 속에서, 먼지에 맞서 살아남은 기억의 화석처럼 떠오른다. 별들과 속삭임 사이에서, 그들은 말없이 함께 숨 쉰다. 때로 한 가족에게 남는 것은 그 중력뿐이기에.
나는 몸을 내맡기는 몸들도 그렸다. 〈숲과 하늘과 강 사이에 누운 두 몸〉은 달아나지 않는다. 쉬고 있다. 그들을 풍경에서 떼어 내고 싶지 않았다. 풍경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이 시기에서 사랑이 두려움 없이 쉬는 유일한 자리다.
이 시기에 나는 배웠다. 속한다는 것과 가둔다는 것이 같은 동사를 쓴다는 것을. 우리를 품어 주는 집이 우리를 침묵시키는 바로 그 집이라는 것을. 그리고 묻힌 것 가운데 죽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뼈에는 생명이 있고, 진흙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곳에서 아직도 우리를 바라보는 눈들이 있다.
Marcus Yabe, 제II기, 2020년부터 2024년까지